2016.03.03 ~ 2016.04.24
전시소개
갤러리로얄에서는 한국에서 첫 전시를 여는 고경애 작가의 개인전 <카미스기의 섬>을 개최합니다. 고경애 작가는 일본에서 왕성한 작업 활동을 펼쳐온 작가로, 전시타이틀 <카미스기>는 작가가 일본 센다이에서 거주했던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의 이름을, ‘섬’은 그곳에서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작가로써 닿고자 했던 이상향을 의미합니다.
Q. 이력이 특이하다. 미술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작업으로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주센다이총영사관에서 한일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작가들을 초대해 작품전을 열었는데, 거기에 서 와타나베 타케히코(渡邉 雄彦) 선생님의 정물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테이블 위에 가면과 새가 있는 정물 이었는데, 만나뵙고 싶어지더라.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결국, 일본작가의 도움으로 선생님께서 지도하고 있는 河北(가호쿠) tbc문화센터의 유화반 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2007년 초봄의 일이다.
Q. 한국에서는 처음 가지는 개인전이라고 알고 있다. 일본에서 고경애 작가는 어떤 작업들을 해왔는가
여전히,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었던 데로 그린다.
인물이나 정물을 그릴때 사진을 견본으로 하는데, 의도 할 때도 있지만 우연에 의해서 결과물이 나올때가 많다.
여전히,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었던데로 캔퍼스에 옮기는데, 특히 인물화가 많다. 2010년도에 '모차르트 카페'와 '모차르트 아틀리에'에서 열렸던 개인전은 첫 데뷔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1년 반을 준비해 16점의 작품을 출품 했다. 그 중 13점이 인물화다. 인물화에 등장하는 인물중, 같은 맨션에 사는 '키미코 '할머니는 나의 첫 모델로 그녀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을 때 까지 그 모습을 기록했다.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의 옷'은 내 여동생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를, '단지 잊기 위하여'는 연극을 하던 중학교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고 아품과 슬픔을 기록하기 위해 나를 그린 것이다. 전시때 그 그림을 보고 눈물을 보였던 관람자가 있었는데, 그림이 말을 걸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놀랐고, 그 힘에 놀랐다.
2011년 일본 문화의 날에 열렸던 '레퀴엠(진흥곡)'전에 출품한 모든 작품에서는 공포와 불안과 우울함이 가득하다. 동일본대지진을 겪고 난 후 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시를 함께 준비했던 시인 프리에레누 베르페(미화코상)씨가 간병중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해엔 '존재의 불행'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것 같다.가장 최근에 있었던 토갠도 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처음으로 작품을 하는데 있어 제약이 있었다. 캔퍼스 사이즈는 작을 것, 인물화가 아닌 정물화를 중심으로 20점을 그려달라고 하더라. 판매가 되어야 하니까. 그건 하나의 실험이기도 했는데, 결과는 좋았다. 그중 '다카하시'라는 일본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그림 세 점을 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겨울이 오면 '겨울장미'를 걸고, 봄이 오면 '카미스기'를 걸고, 여름이 오면 '염소' 그림을 걸고 싶다고 하더라. 내가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대부분 내 작업은 사진을 견본으로 삼아 진행 되는데, 의도할 때도 있지만 어떤 우연에 의해서 결과물이 나온다고 말하는 게 솔직할 것 같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Q.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와 현재 작품을 대하는 지금, 내적으로 또한 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가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9년에서 2011년은 열정이 불타 올랐던 가장 뜨거웠던 시기였다. 혼자 였으니까. 그런데 가족이 생기니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시간적 제한을 많이 받게 되더라. 그걸 받아 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힘들었다. 작업을 하지 않으면 힘들어 하는걸 그가 알기 때문에 늘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마음을 쓴다. '겨울아침'이나 '리베르테', '가족'은 삶의 불규칙에서 터져나온 나의 '숨('이다.
Q. 전시의 타이틀이 마치 시어(詩語) 같다. ‘카미스기의 섬’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센다이에 카미스기(上杉)라는 아름다운 동네가 있다. 주택가로 볕이 좋고, 조용해서 새 소리가 유난히 아름답게 들리는 동네다. <우연이> 그곳에서 첫 둥지를 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바라던 '나'를 만났고,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섬'은 내가 닿고자 했던 생명을 잉태 하는 창조의 열정이다. 뒤돌아 보면, 일본에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그곳에서 보냈으니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Q. 전작과 최근작에서 대부분 인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들과는 어떤 관계맺음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나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기록이다. 내 삶에 대한.
그 중심에 늘 '사람'이 있다. 나는 단지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Q. 인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동물들이 보인다.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가 (나비, 두루미 등)
그것은 '나' 자신이다. 예를 들어, 키미코 할머니의 발 밑에 있는 꽃, 그의 곁을 지나가고 있는 참새와 나비는 우리의 긴밀한 관계, 즉 영적인 교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2011. 3.11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후엔, 하나의 선이 등장 하는데 그 역시 나 '자신'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다. 예를 들어, 키미코 할머니의 발 밑에 있는 꽃, 그녀의 곁을 지나가고 있는 참새와 나비는 우리의 긴밀한 관계, 즉 영적인 교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 게 그녀의 삶이었다. 나는 자주 윗 층에 사는 할머니를 불러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그림책도 보며 따뜻한 휴일엔 외출도 함께 했는데..., 그러면서 내 삶의 일부가 되더라. le의 초상화에도 같은 애정이 담겨 있다.
2011. 3.11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후엔, 하나의 선이 등장 하는데 그 역시 나 '자신'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앞의 것과 다르다. 2008년도 부터 내 작품을 눈여겨 봤던 어떤 관람자 분이 '레퀴엠'전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따뜻함이 사라졌다고. 나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내 심정을 담았을 뿐인데 관람자가 알려 주더라. 그래서 알았다. 지진에서 살아 남았지만 잃어버린 것이 더 많다고.
Q. 인물작업 중에서도 특히 ‘니나 부슈만’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루이제 린저(Loise Rinser)의 소설 <삶의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니나 부슈만은 파란만장한 인생항로와 맞서며,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삶을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변화시키고자 했다.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니나 부슈만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데미안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을 재창조 하고자 하는 내면의 꿈틀거림을 한번즘 느껴봤을 거다. 삶(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온몸을 내던져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삶을 다시, '기록' 하고 싶었다.
Q. 작가에게 작업이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소모하는 일이다. 어떻게 채우는가
피난처 와도 같은 작업이 힘들지 않다. 오랫동안, 회사일이 끝나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서인지 노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 행위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지. 그래서 육체적으로 지치긴 해도 내면이 소모되진 않는 것 같은데.
하지만, 삶의 표면적인 방식(휴대폰과 텔레비전 없는 생활, 출퇴근은 걸어서)이 작업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채워주는 건 확실하다. 한국에 와서는 휴대폰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로 되 있어 갖고 있긴 하지만.
Q. 요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가
가족.
Q. 자신이 창작한 작품들을 통해 세상과 공유하고 싶은 가치가 있는가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 나도 무언가를 세계에 주고 갔으면 좋겠다.
고경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본다고 하는 것에 있어서 통상 본연의 자세, 보통 관점이 서서히 상실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잠시 후, 당신은 유아의 모습은 이런가?, 노파의 손이나 발은?, 임산부는 저런 모양으로 좋은가?- 라는 반감이라고 부를 수 없는 마음의 꿈틀거림을 기억하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당신은 화가의 교묘한 올가미에 걸려들어, <에포케>안에서 어울리고, 거기에서 빠져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덧붙이자면 이 경우 <에포케>는 그림을 그릴 때, 보이는 전부를 전제, 가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고경에는 최근 드문 에포케화가라고 할 수 있는 축복받은 화가다. 역사를 움직인 화가 중에 에포케 화가가 아니었던 화가는 단 한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베르페와 경애는 통곡성과 일상성의 울타리를 넘어, 작품을 만드는 일에 일치해 교류를 쌓아 온 것이다.
-2011.11.3 화가 리키마루 요시타카 (레퀴엠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