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8 ~ 2020.12.05
전시소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 작품의 소재, 등장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과 신발, 그리고 도자기나 조각의 형태와 제작 방식 등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를 유추할 수 있다. 물론, 같은 작품이나 유물을 보고도 다양한 해석과 담론이 만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나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시대를 나름대로 짐작해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예술품들은 그 시대 작가가 마주한 세상과 그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지금도 제작되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은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문화와 트렌드를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갤러리 로얄에서는 전통적인 매체를 활용하여 우리가 현재 살아가면서
쉽게 마주하고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작품에 차용하는 방식으로 작업 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회화작가 김성윤과 도예 작가 유의정의 2인전을 개최한다. 오랜 시간 같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을 하여서일까? 작품의 장르는 다르지만, 두 작가는 유명 상품의 브랜드 로고를 주된
모티프로 작업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번 전시 제목인 가구가락 (可口可乐)은 코카콜라의 중국말로 ‘입에 맞아 즐겁다,’ ‘집안에 즐거움과 부를 가져다준다’ 라는 뜻이 있다. 코카콜라가 중국으로 수입 되었을 때, 중국은 ‘코카콜라’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본인들의 문화와 시대가 반영되어있는 단어로 번역하여 받아들였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김성윤, 유의정은 ‘코카콜라’라는 동일한 주제로 제작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모양의 도자기에
강렬하게 칠해진 붉은 유약, 전통 문양에 자연스럽게 함께 전사된 코카콜라 로고들, 유의정의 도자기로 담아낸 김성윤의 화려한 꽃과 다국어로 번역된 코카콜라 로고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위트 있는 방법으로 표현한다.
미술사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성윤은 회화의 고전적인 장르를 자신의 방식으로 비틀어 시간을 교차하고
편집한다. 작가는 2011년 갤러리현대 윈도우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인 이래 뛰어난 회화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신예 유망주였다. 이 때 작가는19세기 초상화가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의 기법으로 근대 초상화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2019년부터
김성윤은 고전적인 회화 장르인 꽃 정물 작품으로 새로운 실험에 돌입하였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꽃 그림의 대가 얀 브뤼헐 (Jan Brueghel,
1568-1625) 과 얀 반 휘섬 (Jan van Huysum (1682~1749)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차용하고 재해석하였다. 17세기 꽃 정물화를 보면 당시 유럽인이 좋아하던 ‘명품’ 중국 자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김성윤의 작품에서는 요즘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료품 용기나 코카콜라 유리병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 도예 작가 유의정의 작품이 그려진다. 이는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고전적인 꽃 정물 회화에 당대 미술의 현대적인 개념을 접목하려는 시도이다. 이처럼
김성윤은 친숙하고 보편적인 소재를 변주함으로써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해나가고 있다.
유의정은 그 시대의 소비 형태나 정신적, 물질적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매체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자기의 전통적 의미와 형상에 동시대성을 녹이는 작업을 한다. 자신의 작품이 ‘현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자 ’미래지향적인
유물’이 되기를 바라는 유의정은 청자나 백자 같은 전통적인 도자기 유물의 기본적인 틀을 고수하면서 나이키나
코카콜라 같은 유명 상품의 브랜드 로고를 차용하고, 코카콜라 페트병의 형태로 작품을 만들며, 전통적인 문양과 현대의 키치적인 요소를 콜라주 한다. <핸디워크-Golden Moon(福)>(2015) 같은 회화나 <네 가지 풍경Ⅱ>(2015) 같은 설치 작업을 보면 그의
작품은 변화무쌍하지만 도자기라는 전통적인 장르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의정의
작품은 동아시아적 전통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 로고를 차용하는 등 현대 문화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낸다. 다시 말해, 전통 위에 현재의 삶을 기록하고 미래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가구가락’ 전시에서 김성윤과 유의정은 ‘코카콜라’를 모티브로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식문화와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품은 코카콜라를 단번에 연상시키는 붉게 칠해진 공간에서 마치 서로 도란도란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하듯 조화롭게 설치되어 있다. 전 지구적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답답한 요즘 이번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코카콜라의 탄산처럼 청량함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