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4 ~ 2022.06.26
전시소개
“저는 스펙터클한 미술관을 보러갔는데,
정작 보게 된 것은 스펙터클한 군중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번쯤 명성 있는 화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군중에 둘러싸여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까치발을 하여 겨우 명화의 끝자락을 보고 이를
사진에 담았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김홍식 작가는 오랜 시간 ‘도시’ 속 현대인의 삶과
‘시선’에 대해
연구해 왔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이번 전시에서 중심적으로 선보이는 ‘미술관 속 산책자
(Flaneur in museum)’ 연작은 파리의 ‘루브르
(Louvre Museum)'를 비롯한 미술관에서 경험한
군중 속 시선의 교차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로운
시각으로 담은 작품들입니다. '플라뇌르(Flaneur)'는
한가롭게 거닐며 장소를 천천히 탐색하는 '산책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프랑스어입니다. 본래 19세기
전반
파리에 대도시가 형성되면서 그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복잡다단한 구조의 대도시를 분주한 시선으로
탐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김홍식 작가는 밀려드는 군중 사이를 거니는
도시 산책자의 시각을 미술관에서도 발견합니다.
작가는 우리가 열망하는 명화를 향하는 시선 뿐 아니라
'명화와 명화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면들과
이를 바라보는 또 다른 재미있는 시선들을 포착합니다.
작가의
작품 안에서는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아빠의
어깨에 올라간 아이의 시선, 모나리자를 향해 고개를
들어
보지만 군중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 인파를 피해 허공의 구조물을 응시하는
사람의 시선, 그림 속 인물의 포즈를 따라하는 사진을 찍는
사람과 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등 단선적 시선과
이미지를
벗어난 다양한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작가의 '체험적 시선'이 담긴 흥미진진한 산책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과 실크스크린, 회화라는 복합적인 창작 과정을 거쳐
태어나는 작품들은 인간의 실존 방식을 다각도로
표상한다는 측면에서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합니다. 작가는 카메라 렌즈를 관통하는 예리한
시각으로 다양한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고
이를 스테인리스 스틸 판에 감광 작업과 의도적인
부식을 거쳐 독특한 사진을 만들어냅니다.
작가의 사진은 “그곳에 있었음”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되지만 동시에 작가의 손길을 통해 새로운 흔적을
덧입은 시간과 공간을 배태하게 됩니다.
이 사진 판 위에 부분적으로 실크 스크린을 찍어내고,
마지막으로
선별적인 회화 작업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번 전시 ‘플라뇌르: 미술관 산책자’에서는 이러한
복합 매체의 독자적 기법으로 동시대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김홍식 작가의 주요 작품 25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같이 당시 ‘보는
방식’의 혁신을
일으켜 현대 미술의 씨앗이 된 핵심 명화들을 바라보는
군중과 그 사이를 산책하는 작가의 감각적인 관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작품들의
사이를 거닐면서 누구나 그 시선들을 바라보고 즐기며
자신만의 시선을 투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스펙터클한 미술관'은 사실 각기 다른
산책자들의 시선으로 가득 찬 공간이며, 이는 다양하게
얽힌 우리 삶의 본질적 모습과
꼭 닮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