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30 ~ 2015.07.04
전시소개
갤러리 로얄에서는 2015년 5월부터 7월 초까지 이미지와 물질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작업방식으로 평단의 관심을 받고 있는 홍수연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단색 캔버스를 바닥에 두고 다양한색과 밀도의 물감을 흘리면서 레이어를 올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미묘한 긴장감을 담아내는 홍수연 작가는 미술계의 현란한 변화와 트렌드 속에서도 묵묵히 추상미술 작업을 추구해왔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색채와 단순한 조형미가 빛을 발하는 단정한 회화적 공간을 창출해내며 최근 세계적으로 다시금 재조명 받고 있는 한국 단색화의 대표적 2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통제와 균형속의 분출, 그 일탈을 향한 욕망
이필/ 미술평론가
홍수연의 그림은 현실 같지 않은 공간 속을 부유하는 모호한 추상적 형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색채와 단순한 조형미가 은은히 빛을 발하는 단정한 회화적 공간을 창출해 낸다. 그녀는 특유의 색감을 풍기는 블루, 그린, 그레이 계열의 채도와 명도가 경감된 색채들을 주로 쓰는데,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풍성한 그녀의 색채들은 보는 이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물감을 몇 겹이고 올려 한 치의 흠집이나 붓 자국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바탕색을 다지고, 그 위에 추상적 형태를 배치하고, 또 몇 겹이고 물감을 올리는 구축적 과정을 거쳐 처음의 평면적 형태를 부피와 음영을 가진 입체적 형상으로 서서히 변모시킨다.
근작에서 홍수연은 조심스럽게 다듬은 입체적 형상 곁에 물감을 과감하게 흘려서 리드미컬하게 풀어놓은 추상적 이미지를 허용하기도 하고, 한동안 잘 쓰지 않았던 레드, 그린, 바이올렛 계열의 색채를 사용해 기존의 흑백 단색조 작업으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한다. 칼날 같은 감각으로 그려낸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무중력의 공간에 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형상들을 배치하며 혼자만의 통제와 긴장의 놀이를 해오던 그녀가 최근 일군의 작품에서는 기존의 방법과 상충되는 과감한 풀어놓기를 시도하고 있다. 홍수연은 자신의 작업 과정을 공중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으로 표현할 만큼, 날 선 감각과 철저한 테크닉으로 화면의 균형과 긴장을 추구해 왔다. 그러한 그녀가 흘리기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그 긴장과 균형을 깨거나 터뜨리려는 분출을 시도한 것은 홍수연의 모처럼 만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일탈은 작가 자신의 숨통을 터주고 보는 이에게는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일탈을 꿈꾸며 어떠한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 홍수연은 홍수연이다. 다양한 시도들은 그녀의 작품에 더 풍부하고 깊이 있고 다채로운 느낌을 더하지만, 홍수연 그림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작가와 작품의 순수한 일치, 이것이야 말로 홍수연 작업의 진정한 힘이자 매력이자 남다른 가치이다. 작품이 본인의 존재와 고스란히 닮아 있는 것, 홍수연이 아닌 것은 결코 담을 수 없는 것, 작품에 한 치의 군더더기도 허용할 수 없는 단호함, 그 순수한 일치와 집중도 속에서 탄생한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변함없는 진한 존재감을 발한다.
그 존재감은 은은하고 고요하고 느리고 풍부하게 발산된다. 홍수연의 그림 앞에 서면 관람자는 모처럼 화가의 그림을 보는 맛을 한껏 향유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타협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스럽게 담아내지만, 그것이 감상자에게 부담스럽게 강요하는 것은 없다. 감상자는 그저 보고 느끼면 된다. 감상자는 어떤 느낌이던 생각이던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 느낌과 생각의 한 가닥을 홍수연의 그림과 연결 지어 자신만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작품을 탄생시켜가는 작가의 고도의 집중된 시간은 고스란히 감상자에게 전해져 온다. 홍수연의 그림은 감상자를 고요하게 만드는 그림, 찬찬히 보게 만드는 그림, 가만히 느낄 수 있는 그림, 더 가까이 다가가 보게 만드는 그림이다.
홍수연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더 많이 보이는 그림이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기이한 형상과 아름다운 색채간의 긴장과 통제, 그 속에 살짝살짝 허용하는 놔두기와 우연성, 캔버스에 물감의 층을 찰싹 달라 붙인 중력의 힘에 의해 형성된 무중력의 공간, 기나긴 노동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쌓인 레이어의 축적이 들어있다. 이를 통해 홍수연이 제시하는 것은 초현실주의적 낯설기의 공간이자 미지의 친숙함의 공간이다. 단순한 구도와 절제된 조형미 안에 숨어 있는 색조와 레이어와 미세한 디테일의 향연은 관람자를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끌어당기는 묘미가 있다. 감상자는 화가의 감각과 사고의 집중이 탄생시킨 순도의 공간 속에서 은밀한 일탈을 꿈꾸게 하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판타지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든다.
홍수연의 그림은 긴 여운을 남긴다. 감상자는 작품 앞을 떠나서도 길게 남는 그림의 잔상을 며칠이나 즐길 수 있다. 예술작품의 존재로서의 거기 있음이, 자신만의 빛을 발함이 왜 진부한 말이던가. 작가가 그것을 통해서 관람자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홍수연의 그림은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빠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억눌러 왔던 느린 서정적 감각을 끄집어내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존재와 예술의 근원지 같은 곳에로의 귀환을 꿈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