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4 ~ 2013.06.23
전시소개
2013년 갤러리로얄의 특별기획전 주제는 ‘흙’이다. 전통의 깊이와 현대의 감성을 넘나들며 현대미술 속에서 도자 공예의 정체성을 확립시킨 대표적인 작가 권대섭, 이헌정과 로얄&컴퍼니의 콜라보레이션 전시를 선보인다. 욕실문화선도기업 로얄&컴퍼니는 기업 이념에 부합하는 특별기획전을 매년 한차례 갤러리로얄에서 개최한다. 예술이 일반 대중, 그리고 산업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 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2009년 ‘상상하는 뚜왈렛’전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참여 작가 6인에게 지원하여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던 전시 ‘뒤샹의 변기에 대한 오마쥬’를 개최하였다. 2011년 ‘21개의 아이디어’ 전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공예가 21명을 초청하여 예술을 실생활공간 안에서 더 쉽고 밀접하게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기능과 미를 넘나드는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를 선보였다.
“Take a moment.”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뜻으로
욕실이라는 공간이 내밀하고 은밀한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전통적인 도예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달항아리 작가 권대섭과 설치적인 어법을 도입하여 도예의 기능성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이헌정은 작업의 스타일로 볼 때 대척점에 가깝다. 하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비해 ‘태생적 느림’을 한계로 받아들여야 하는 미학적 특징은 두 작가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흙과 불, 그리고 작가의 섬세한 감각이
일체화된 작품들을 통해 도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는 생활 속의 예술을 표방하는 기업 이념과도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다.
복합문화공간 갤러리로얄은 커뮤니티 성격과 기업의 문화 참여적 성격이 강조된 곳이다. ‘화장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안락함이 있지만, 동시에 격리된 듯한 두려움의 공간이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이러한 독특한 장소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대미술 속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모티브를 제공해왔다. 인간의 본능과 직결된 곳으로 가장 내밀하면서도 원초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두 작가는 기존에 작업해오던 작품들과 함께 욕실의 기능성이 강조된 디자인 작업을 새로이 선보이며 관람객과의 공감대를 보다 친밀하게 형성하고 주거 공간 속 유쾌한 상상을 유발한다. ‘흙’이라는 공통적 재료를 이용하여 '욕실' 이라는 협소하고도 또한 무한한 공간을 두 작가의 다양한 시각적 매체로 풀어내려 시도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이 일반 대중 그리고 산업과 만남을 넘어 더욱 다양한 시도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권대섭>
백자의 전통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아무리 예찬을 해도 아깝지 않다. 순백의 단순한 색조, 자연스럽고 대범한 선, 티 없이 맑고 정치한 빛깔, 순박하고 건강한 형태, 넉넉하고 원만한 곡선 등에서 그 아름다움의 백미를 찾는다. 백자의 미학은 수백 년 동안 그렇게 칭송되어 왔다.
사발들의 모양새는 언제나 한결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서로 똑같은 것이라곤 단 한 개도 있을 수 없다. 생김새는 비슷비슷해도 밥사발, 국 사발, 찬 사발, 차
사발 등으로 구애 받지 않고 사용된다. 사발그릇은 이렇게 자유롭게 소용되고,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무엇을 담아도 어색하지 않다.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높거나 낮지도 않은 참으로 겸손하고 관대한 성품을 지닌 그릇이다. 두 손바닥을 적당히 모아 감쌀 만한 크기이다.
이처럼 자연스럽고 정감이 넘치는 사발이 권대섭의
황토가마에서 구워지고 있다. 그의 사발은 조선시대부터 장고의 조탁으로 다듬어진 것으로, 백자의 기술과 정신이 녹아든 명품들이다. 모양도 평범함 그 자체이다. 최소한의 형태와 기능을 지녔을 뿐, ‘그릇의 근본’만을 남겨 놓았다. 그래서 모든 그릇의 의미를 포용할 수 있고, 모든 종류의 용기 일반을
대표하는, 그릇 중에 그릇이 된다.
그가 열정을 쏟아온 또 하나의 걸작은 달 항아리이다. 이름 없이 살다간 조선 도공들의 티 없는 마음이 그 멋을 낸 것일까. 백자
항아리의 멋과 맛은 두고두고 음미해도 지루함이 없다. 요즘도 많은 백자들이 나오지만, 특히 권대섭의 백자사발과 달 항아리는 가히 군계일학의 명품이다.
백자의 예술적 가치가 현대미술 시장에 부각되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지금은 매끈한
현대식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종종 그의 백자를 본다. 깔끔하고 단순한 현대식 공간의 정서에 백자가 딱히
어울린다는 얘기다. 그의 소박한 백자사발의 멋이 현대 감각으로 창작된 모노크롬이나 미니멀리즘 예술과
맞수를 놓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은 작품 자신 밖의 그 모든 외적인 요소들을
불순물처럼 여기고 그것들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어 한다. 예술이란 꼬리표마저도 떨쳐버리고 그저 특별한
일상품으로서 남길 바란다. 이러저러한 꾸밈이나 장식 없이 우리의 일상에 쓰임 받는 완상(玩賞)품 이길 원한다. 이런 점에서 백자와 통하는 면이
있고, 미니멀리즘 표현형식도 역시 단순하고 결백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간 잊혀 진 백자사발의 현대성이 오늘날 한 사조로 부상된 미니멀리즘 예술과 얼맞고, 전통과 현대의
교차로에서 만난 것이다.
/윤익영(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장)
<이헌정>
도예가가 빚어놓은 그저 흙덩이 인지 그릇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물을 보며 만든 이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엿보려고 노력했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사물을 보며 만든 이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엿보려고 노력했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사물을 만들면서 그 내용과 기능을 보는 이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타인의 작품이나 처음 보는 사물을 접할 때 그것을 이해하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고 편안히 눈 안에 담아두는 버릇이 생겼다. 요즈음 나는 작업을 할 때 「계획과 그것에 따른 실천」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이유는 관객들에게 내용을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것, 그리고 제작자에게 설명을 구하는 것, 그리고 제작자에게 설명을 구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나의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솔직한 감성을 가로막는 지성에 의해서 지배되는 일종의 폭력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슴으로부터 손끝으로 이루어지는 결과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행위들은 내 몸 속에 적재된 기억들을 밖으로 뱉어놓으며
정신적 여행을 반복한다.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작업의 원천인 동시에 작품활동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눈과 가슴 그리고 작업을 통한 나의 여행은 주로 인간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공간과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역사라는 긴 여정의 여행을 경험한다. 그 행위는 나에게 이 문화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소박한 존재가치와 기능을 부여해주기에 충분한 역할을 한다, 여행은 매우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 달콤함을 얻기 위해서 때로는 참기 힘든 혼돈 속의 고통과 여행의 달콤함보다도 더욱 유혹적인 신기루와도 같은 작은 타락과 마주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흐르는 급류와 흡사하게 느껴진다.
/이헌정 작가노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