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8 ~ 2012.04.22
전시소개
[Twilight zone]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중간지대, 경계 불분명 지역” 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80년대 높은 인기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던 “환상특급”이라는 외화시리즈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 작품의 주인공들은 현실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우리가 한번 정도 상상을 해봤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내용이다. 끝이 없고 자유로운 환상의 세계는 그것이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인지 아닌지 조차 모호하다. 또 행복한 환상에 젖어 있을 때는 그 상황에서 깨고 싶지 않을 만큼 달콤하며,
현실에선 불가능 했던 욕구를 성취할 수 있다. 반면, 나쁜
환상에 빠졌을 때는, 아주 끔찍하고 괴로운 나머지 그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그 시리즈는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김을의 작품은 [Twilight zone] 이라는 단어와 사전적 의미에서도, 그 외의
의미에서도 참 흡사하다. 인생의 “중간 지점”인 약 반세기를 살아온 작가의 작품에 드러나는 장난기 어린, 유아적
순수함이 베어 있는 상상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작품에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며, 함께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순결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부조리한 세계에서의 비사회적인 선택으로 인한 진한 고독과
우울 또한 함께 공존하고 있다. 주제에 있어서도 특정한 주제 없이, 스스로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순간순간의 상황을 드로잉을 통해 표현해낸다. 그의 작품 자체가 “경계지역”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는 환상의 세계인 것이다. 갤러리로얄은 김을 작가의 예술적 유토피아를 볼 수 있는 16번째
개인전을 2012년 3월
8일부터 2012년 4월 22일까지 개최하며, 리셉션과 함께 김을의 드로잉집 [MY GREAT DRAWINGS]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고집스럽게 살아온 김을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한국미술의 관습을 역순으로 걸어왔다. 생(生)의 한 바퀴를 돌아온 시점, 자기의 위치에서 드로잉의 존재감은 깊게
뿌리 박혀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가 향유하는 예술의 끝, 드로잉의
끝은 어디쯤일까? 그는 작업실에서 하루 온종일 그리고 만들고 붙이는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틈틈이 사색(思索)하며
즐긴다. 삶의 무게보다 예술의 무게가 무거워진 지금 지루한 일상은 유토피아로 바뀌어가고 있다. 작업 속 그의 유토피아에는 벌거벗은 그가 존재한다. 그는 여전히
현실처럼 “드로잉”을 하고 있다. 다만, 넓은 들판 위에서, 혹은
나무들 사이에서, 머리에서 생각의 나무가 자라기도 하며, 심장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캔버스들로 의자를 만들기도 한다.
2002년을 기점으로 그의 드로잉은 맹목적으로 달려왔다. 거의 매년 ‘작업-전시’를 지속하며, 더불어 드로잉북도 만들어냈다. 처음과 달리 주변인들로부터
‘이제는 그만하지’라는 우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또 그리며 점점 더 예술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
II. 순간의 풍부한 발상과 단발적인 상상적 유희로 뒤범벅된 잡화(雜畵)
나의 드로잉은 잡화(雜畵)다. 의도하지않은
특별한 주제가 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소한 것들이 무작위로 섞여있게 된다. 나의 정신도, 인생도, 세계도, 심지어는
우주도 잡(雜)이니 잡화가 차라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내용도 형식도 뒤섞여 있지만 사시현상에 주의만 한다면 가히 볼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김을 작가노트 중
삶이 예술의 무게로 바뀌다보니 온갖 상념들이 뒤섞인다.
사랑, 농담, 정념, 눈물, 도덕, 욕망, 아름다움, 상상, 영혼, 종교, 웃음, 진실, 꿈, 분노…
이것이 김을의 생각으로 뒤범벅되어 화두라는 ‘빈 그릇’에 오랜 숙성을 거친 후,
‘드로잉’이라는 다양함의 변주에 리듬을 타게 되었다. 김을의 “눈물”이라는 시리즈 또한 서정성이 아닌, 오히려 인간감정의 총체성과 관련된 어떤 철학적인 개념에 가깝고, 그의
드로잉 작품에는 어떤 처절함도 실낱처럼 가볍게 하는 동화적 무구함과 아릿한 슬픔과 고독 함께 공존한다. 그
시작은 작았고 낱낱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낱낱들이 모여지면서 거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2009년 김을이 부여한 ‘my great drawings’이다.
my great drawings
드로잉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드로잉스럽게 사고하고 행동하며, 드로잉으로 쌓여진 나의 예술세계.
그것은 사실 드로잉이 아니다.
차라리 들판에 부는 바람, 혹은 밤하늘에 빛나는 한 줄기의 유성, 혹은 전해지지 않은 한편의
신화에 가깝다.
오직 고독 속에서 그들은 빛을 낸다. 비록 고독하지만 자유롭고,밝고, 드넓은
세계를 갖는다. 그들은 붕새와도
같다. 사실 나는 나의 드로잉 작업을 잘 모른다. 다만 어떤 느낌이 감지될 뿐이다.
..................................!?!?
문득 뒤돌아보니 나의 드로잉들이 애처롭게 쌓여있다. 그들에게 멋진 이름을 붙여본다.
-김을 작가노트 중
그의 이런 생각은 예전에 ‘혈류도’를 그린 후 특정한 주제에서 벗어나 세상 전체를 아우르는 것을 그리는 고민을
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해결의 실마리를 드로잉으로 풀고, 현재도
그 판타지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판타지는 그의 나이 불혹의 끝자락에서 시작되어 이미지
언어를 다시 쓰듯 하나씩 언어를 찾아갔고, 뒤늦게 깨달은 드로잉은 그동안 그가 품어왔던 미술 아니 예술의
모든 것들을 되돌려 놓는다. 드로잉이 단순히 ‘긋기’로서 존재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척탄병처럼
김을은 세상의 모든 대상을 사유(思惟)함으로써 깨닫고 얻어지는
존재감을 찾고 재해석한다.
III. “날 것”을 찾는 야인(野人) 김을의 진정성과 소박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솔직히 우리들은 김을 드로잉의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순박하고
정직한 그를 믿는다. 어떤 기회주의자보다, 전략적인 사람보다, 정치적인 사람보다,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보다, 미술사를 믿는 사람보다, 주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보다는 저 들판에
구름을 쫓는 야인같은 김을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의 드로잉의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만들어놓고 정해놓은 언어와 행동의 규칙아래 우리는 무수히 지나치는
무의식보다 확연한 이미지와 글 그리고 말을 믿고 그것이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행해왔던 드로잉의 행간을 너무 쉽게 간과하거나 그 드로잉 너머의 생각을 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을은 저 들판, 저 야인 같은 삶을 위해 ‘날 것’으로서의 드로잉을
찾았는지 모른다. 빠른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로 역주하듯, 가볍고
느린 언어의 질주는 인생역정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그 한계를 넘은 자연스러움과 자율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
김을은 그 어느 때보다 의욕도 많고, 작업할 것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해가 뜨고 저물어가는 자연의 순리에 난감해한다. 하지만, “김을은 김을이다!”, “그림 이 새끼!”라는 글자드로잉에서 그의 자존감이 느껴진다. 김을은 현실에 안주하는 꿈을 꾸지 않고, 들판에 야생하는 그냥 풀처럼 야인의 의연한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그는 넓은 들판에 조그마한 야산을 만들어 그 위에 홀로 서서 동쪽 한 번 바라보고, 서쪽 한 번 바라보고, 구름 따라 바람을 쐬며 새처럼 날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