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6 ~ 2011.02.06
전시소개
“자신이 꿈꾸던, 바라는 곳까지 가고 싶은 희망은 누구나 품고 있을 겁니다. 그 자리에, 그곳에 가고 싶기 때문에 실패를 하더라도 부지런히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변대용)
Ⅰ. 변대용, 스포츠에서 꿈을 보다.
스포츠는 철저하게 근대의 산물이다. 흔히
스포츠 하면 올림픽을 떠올리면서 그리스 시대를 상상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의 개념은 "기분전환이나
육체적? 정신적 기쁨"이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데스포흐(Desport)가 그 어원이다. 또한 현대 스포츠의
뼈대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만들어진다. 영국의 체육교육은
현대 스포츠의 개념을 구체화 시킨다. "스포츠가 청소년의 인성, 협동심, 남성다움, 애국심을
기르는데 부응하며, 국가로서도 강인한 군인을 양성하여야 한다는 목적"에
부합하면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제시되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안전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모험을 추구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폭력에 대한 대리만족의 기제를 찾게 된다. 여기에 스포츠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매스미디어와 자본, 그리고 국가가 개입하면서 스포츠는 왜곡되고
변형되기 시작한다. 순수한 인간의 체육활동이 이데올로기가 되는 지점이다. 스포츠는 자본의 각축장으로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의 수단으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월드컵에 열광하는 관중의 망막에 새겨져 있는 마케팅의 흔적들, 찰나의
순간을 만끽하는 쇼트트랙을 둘러싼 사인보드, 골인 장면의 배경이 되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그리고 김연아의 승리와 가슴 뭉클한 애국가. 이런 것들이 현대 스포츠를
구성하는 백그라운드들이다.
Ⅱ. 변대용은 탁월한 이미지스트이자 독특한 어법을 구사하는 팝 아티스트이다.
분명 작가는 2000년대 이후 한국의
팝 아티스트 중에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변대용은 심미적이고
유희적인 팝아트의 경향을 넘어 현실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점과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현실의 다양한 레이어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작가의 시선이 머문 곳은 "스포츠"이다. 월드컵의 열기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작가는 그 열광의 근원과 주체가 무엇 인지를 사유하게 된다. 분명 스포츠의 여러 이면이 떠올랐을 테지만 작가의 시선은 쓰러진 권투선수의 눈물과 높이뛰기에 실패한 사람의
절망에 멈춘다. 물론 야구타자의 임팩트 순간이나 탁구선수의 수비 장면처럼 작가 특유의 팝 적인 표현이
강조되고 있는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이 작품들은 마치 만화의 기법 중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스틸 장면을 한 화면에 그려 넣은 것과 같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는 조각들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바로 '꿈' 혹은 '희망'이다. 작가는 특유의
비판적 정신을 잠시 접어 두고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혹은 그 속에서 희망과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에게 포착된 이미지는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감당하고 있는 장애우들의 경기장면이다.
Ⅲ. 작가가 이번 전시의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동기는 어쩌면 매우 간단하다.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상징을 찾아 헤매었던 작가는
장애우들의 경기모습을 보면서 꿈과 희망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의족으로 달리는 허들선수, 한쪽 팔이 없는 축구선수들의 경기장면 속에서 작가는 어떤 숭고함 같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의족에 의존한 허들선수의 손은 마치 날개처럼 형상화 되어있다. 변대용스러운
능청스럽고 은근한 상징이다. 그래서 쓰러진 건투선수와 높이뛰기에 실패한 선수 그리고 장애우들의 경기장면은
함께 오버랩되면서 그들이 흘린 눈물은 이제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전이된다. 이데올로기 혹은
권력이나 자본의 공모와는 무관하게 삶을 위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그 속에서 세상의 '꿈'과 '희망'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