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6 ~ 2009.03.20
전시소개
이윤정의 작품을 굳이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분법적인 요소로 구분하자면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둔 작업이다. 그러나 그 익숙한 풍경의 구성은 새롭다. 이윤정의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을 관찰하고 있는 시선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양한 관심사가 존재하듯 시각 또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마치 자유분방한 아동의 심리가 배인 그림처럼 단순화된 선과 다(多)시점, 그리고 공간의 확장을 통해 현실생활에서의 공간과 사물에 대한 독창적인 관찰법과 인식 등 새로운 모색이 눈길을 끈다. 이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과연, 우리에게 익숙한 고정된 시선의 풍경은 진실일까?
1) 이윤정의 앵글숏(Angle Shot)
앵글숏(angle shot)이란 영화 촬영기법이 있다. 이 용어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장면처럼, 카메라의 위치나 촬영 각도 따위를 바꾸어 가며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윤정의 작업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이동하면서 관심이 가는 대상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제자리에서 촬영하기도 한다. 이것은 몸을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움직임만을 통해 렌즈로 대상을 바라보는 앵글숏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시점의 이동으로 나누어진 화면들은 벽에 설치된 각각의 조각난 캔버스가 된다. 불완전한 이미지들로 조각조각 이어붙인 작업들이 완전한 현실을 재현해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긋남’을 직설적으로 가시화 하는 조건이 된다. 캔버스는 다시 모여져 큰 화면을 이루게 되고, 여러 시점으로 포착한 장면을 모은 큰 화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좀 더 ‘현실의 진정성’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2) 그들만의 작품읽기
벽에 설치되는 캔버스들은 그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고 높낮이도 다르며 서로 떨어져있기도 하고, 다시 연결되어있기도 하다. 선의 굵기의 변화로 원근이 표현되며, 색이 존재하는 곳엔 선이 사라진다. 그 색과 형태는 단순하다.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 듯하면서도, 그 시작과 끝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동하면서 바라본 주요 대상 외에 배경은 여백과 단순한 색 면에 가려지고, 여분의 공간들은 완전한 평면이 된다. 하지만 그 평면 안에는 많은 대상들과 시간이 함축되어 있으며, 바라보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이외의 것들은 화면 안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사라짐은 ‘증발’이 아닌 ‘여백’으로 포함된다. 강조되어 드러난 부분과 생략되어 간략하게 표현된 부분은 조화를 이루어 서로를 지지하게 되며, 남겨진 공간의 상상은 관람자의 몫이 된다. 이로써 전시공간은 한층 더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3) 공간의 끝없는 확장
조각난 캔버스를 설치하는 것으로 작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캔버스와 벽을 잇는 다양한 굵기의 라인 테이프로 인해 작업은 다시 시작된다. 프레임을 주변공간으로 과감히 확장하여 기존의 회화가 지닌 정적이고 시각적 요소를 설치형식을 통해 동적인 리듬감으로 확장시킨다. 대상을 캔버스 안에서만 국한시키지 않고 끝을 알 수 없는 벽면까지 연장해 나아간다. 관찰된 대상들은 다양한 시점을 통해 사진으로 포착한 것들이지만, 정작 그 대상 안에 관찰자가 나타나진 않는다. 그것은 인위적인 지각(知覺)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공간이다. 새롭게 재구성된 공간은 평면으로 옮겨지고, 벽에 설치되고, 그 작품 앞에 서있을 때 비로소 작품은 완성된다. 개개인의 기호와 감성의 경험, 또는 집중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그만의 작품읽기’는 시작된다.
4) 정중동(靜中動)의 미학
조용한 가운데에도 움직임이 존재하듯, 이윤정의 작품에선 정중동의 운동감이 새로운 조형어법을 연출해내고 있다. 마치 동양의 명상적인 정중동 미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평면회화의 장점과 공간의 음률을 자아내는 입체적인 움직임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