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20 ~ 2009.02.22
전시소개
인물을 매개로한 두 가지 “드라마” 읽기
여기, 두 작가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인물이라는 가장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두 작가의 이야기는 절대 가볍지 않다. 각자의 방식으로 깊은 심연(深淵)의 바닥에서 길어 올려진 인물들은 때로는 삶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성찰하게 하고, 때로는 잊어 버렸던 자아를 발견하게도 한다.
이 두 작가의 시선에서 건져지고 내면을 통해 걸러진 세상과 시간과 사건들은 화면 속에 정지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아주 긴 이야기가 있고, 슬픈 현실이 있고,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다.
구이진: 내 마음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들
구이진의 작업은 철저히 문학적(혹은 동화적) 상상력에 기인하고 있다.
「마법사에게 납치된 처녀」, 「보랏빛 쌍둥이」, 「초콜릿으로 만든 방」 등 작품의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풍부한 서사적 상상력으로 관객을 자신의 화면으로 세상으로 이끈다. 그의 작품에는 손, 새, 쌍둥이, 아이 등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 키워드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화면의 다른 구조물들과 함께 그의 몽환적 화면의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예를 들면 인물을 감싸고 있는 손의 제스쳐라든지, 혹은 어깨 위 살포시 올라앉은 환영과도 같은 새, 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조그마한 아이 같은 것들이다. 그녀는 주인공인 그 아이를 통해 상실된 자아와 그 존재감을 성장시키는데, 그 모습은 흡사 고통스런 현실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자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마음의 얼굴을 하나씩 발견하는 행위는 분명 흥미롭고 가치 있는 탐험이지만 동시에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지극히 자아 반영적인 작업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 간다.
이상선: 고통스러운 삶에 바치는 헌화가(獻花歌)
이상선의 화면에 등장하는 어린아이 작업들은 언뜻 보기에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과감하게 포착되어 있는 것 같지만 오랜 기간 자세히 관찰하다보면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 상실, 소외, 공허가 느껴진다. 온갖 미묘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그의 인물들은 ‘꽃과 아이’라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두 가지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아이의 얼굴을 배경으로 흩뿌려진 그 꽃들은 마치 자라서 세상이라는 격전장에 내 던져질 인간의 나약한 삶에 바치는 헌화가(獻花歌)처럼 쓸쓸하고, 시간이 지나면 흩날려 소멸될 수밖에 없는 이름 없는 들꽃처럼 희망 없는 삶의 고통을 담담하게 끌어안는다.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는 화가의 숙명을 감내하고 있는 그의 화면은 세상을 개조시킬 수는 없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일상을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포착해 내고 있으며, 그래서 그의 시선은 삶을 경건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작가의 공통점은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 이외에도 내면에는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양면성을 대립시키고 절충해 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체라는 사회라는 냉혹한 틀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희망이 있기에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현실을 초월할 수 있고, 이 고단한 삶을 버텨낼 수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